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야구 스타일 (문단 편집) ==== 김성근 감독의 육성 사례 : 투수 ==== 김성근 감독의 육성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은 사실 타자보다는 투수 쪽인데, 세간에도 김성근이 투수 조련과 운영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투수를 아주 잘 키워냈으며, 태평양 돌핀스의 짠물 트리오라 불린 신인 3인방, 양상문, 김현욱, 이동현, 전병두, 고효준, 송은범, 김광현 등등 수많은 투수들을 키워냈고 특히 불펜 파이어볼러들을 잘 키워냈다. 대표적으로는 SK 시절의 [[전병두]], [[고효준]], [[엄정욱]] 같이 구위만 좋고 제구가 아예 안 되는 선수들을 육성하여 좋은 스윙맨으로 만들어냈다. 삼성 2군 감독 시절 키워낸 [[배영수]] 또한 좋은 사례로, 배영수 본인이 당시 그 훈련을 통해 하체를 가장 잘 사용하는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이미 망했다 싶은 선수들을 살려내어 쓰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롯데에서 방출된 [[가득염]]. 이미 끝났다 싶은 노장을 LOOGY로서 되살려내어 쓰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자기가 망가뜨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혹사로 이미 망가져서 끝났다 싶었던 박정현조차 쌍방울 임기 말기에 데려와 나름 수준급 선수로 활용하였다. 특히 멘탈 관리에도 뛰어난 편이었는데, [[정명원]] 같이 멘탈에 문제가 있던 선수를 프로야구 최고의 강철 멘탈로 만들어냈으며, 신나게 혹사당하고 끝나버리긴 했지만 그 혹사 이전에는 아예 멘탈이 막장이라 구단에서조차 포기했었던 [[신윤호(1975)|신윤호]] 또한 가다듬어 요긴하게 활용하였다. 쌍방울 시절에는 [[김현욱(야구)|김현욱]] 같이 야구를 사실상 포기했던 선수를 리그 최강의 미들맨으로 키워내기도 하였다. 이 분야의 최고 아웃풋은 바로 [[임창용]]. 재능이 뛰어났으나 놀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팀 훈련도 불참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2군에서 썩고 있던 선수였는데, 김성근에게 크게 혼난 후 반성하고 성실한 선수가 되었고, 김성근 역시 아예 숙식을 함께하며 관리를 해준 덕에 오늘날 임창용이 탄생할 수 있었다. 원포인트 레슨도 좋은 사례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박희수]]와 [[윤희상]]이었다. 윤희상에게는 어깨 통증 등으로 괴로워할 때 김 감독이 해준 말은 "아파도 안 아프게 던질 수 있는 폼을 연구하는 것이 프로의 자세"라는 조언으로 윤희상이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109&aid=0002434427|#]] 박희수에게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필요하다는 조언으로 투심에 매달릴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https://sports.naver.com/news?oid=109&aid=0002265828|#]] 이러한 선수들은 확실히 김성근 감독의 성과라 할 만하다. 다만 가득염 정도의 사례를 제외하면 절친 [[김인식]]과 같은 재활 공장장 감독이라기에는 어렵고, 유망주이긴 하지만 사용이 어려웠던 선수들을 훈육하고 적재적소에 기용하여 그 사용 방향을 잡아내는 것에 뛰어난 감독이었다. 그러나 한화에서의 양훈 사례와 같이 지나친 체중 감량이나 훈련으로 망친 케이스도 분명히 있었으며, [[고양 원더스]] 감독 시절 외국인 선수였던 [[대럴 마데이]]의 상위 리그로 올라가고자 하는 절실한 심리를 이용하여 무지막지한 혹사를 시켜 다음 해 부상을 당하게 한 반대 사례도 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3160411&redirect=false|관련 기사]] [* 다만 마데이의 케이스는 김성근 감독만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해당 항목에 나온 김지호 선수의 증언처럼 김성근 감독의 만류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스스로 무리한 자진 등판을 지나치게 감행한 것도 있었다.] 또 투수 육성의 경우 당장의 성적을 위해 신체의 전성기에 다다르기 전에 너무 어린 나이로 과도하게 많은 이닝을 소화시키거나 역할 구분 없이 스윙맨으로 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김성근에 의해 1군에 확고히 정착한 시즌에 고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다시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유리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태평양 시절 [[박정현(투수)|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신인 3총사[* 기존 서술에서 이들 3총사를 그냥 원래 잘하는 투수였다고 서술한 부분이 있었으나, 신인 3총사라는 말에 오해한 케이스이다. 박정현은 2년차 중고 신인으로 데뷔 시즌 성적은 18 2/3이닝 7.71의 보잘 것 없는 성적이었으며, 최창호 또한 3년차로 2년 동안 23.1이닝 8점대 평균 자책점의 별볼 일 없는 선수였고 심지어 연습생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 증명된 바조차 없는 선수였다. 당시 태평양 투수 트로이카 중 순수한 1년차 신인은 정명원밖에 없었으며, 이들을 발굴하여 키워낸 것은 어쨌든 김성근 감독이 맞다.]와 OB 시절의 [[윤석환]], 쌍방울 시절의 [[김현욱(야구)|김현욱]], SK 시절의 [[전병두]] 등. 선수 본인이 나는 김성근 감독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LG의 [[이동현(1983)|이동현]]도 꼽을 만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